현장 소식

제목 [발달장애대안학교 산돌학교 선생님 인터뷰] 동그랗게 어우러져 같이 살아가고 싶어 ‘그랑’입니다. 작성일 08-01 16:12
글쓴이 최고관리자 조회수 1,403

본문

동그랗게 어우러져 같이 살아가고 싶어 ‘그랑*’입니다. 

- 군산 발달장애대안학교 산돌학교 선생님들과의 화상 인터뷰 

- 연극은 학생들에게 의사소통 능력과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상처받아온 부모님들에게도 치유의 공간...   

- 발달장애인들도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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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한 ‘그랑’ 예술단과 산돌학교 학생들. 2018년 12월 청와대 초청으로 성수아트홀에서 ‘군산, 1919년 그날’ 공연을 마치고.  


 *그랑 : 산돌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 청년들의 예술단. 2015년 창단 후 매년 연극 공연을 해왔고, 2018년에는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성수아트홀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코로나시기에도 유튜브로 온라인 공연을 해오다가, 올해 2023년 2월 3년 만에 군산 예술의 전당에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세상과함께는 ‘그랑’ 초기,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장애인 연극제 참가를 지원하면서부터 산돌학교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은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휠체어 탄 사람도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회의 문제이며, 장애인이 수용시설에서 살수 밖에 없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복지 서비스와 소득 보장 정책 등 그 모든 관련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전사들의 노래에서, 비마이너 기획, 홍은전 지음) 



산돌학교에는 가족들이 돌보기 어렵거나 평범한 이웃으로 함께 살기를 희망하며 한걸음씩 내딛고 있는 발달장애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의 야간·주말돌봄을 위해 산돌학교 선생님들은 돌아가며 당직을 섭니다. 식사와 생활 관리도 오롯이 선생님들 몫입니다. 산돌학교가 없다면 이 학생이나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발달장애인예술단 <그랑>과 산돌학교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장마비가 내리는 7월 토요일 오후, 세상과함께 활동가들이 산돌 선생님들을 온라인에서 만났습니다. 홍진웅 교장선생님, 이보미 교감선생님, 교육팀장 김현숙 선생님, 그랑 연출과 문화예술 강사 김영희 선생님이 옹기종기 화면에 나타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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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학교 선생님들과 줌화상 인터뷰, 그랑 연출 김영희 선생님, 홍진웅 교장선생님, 교육팀장 김현숙 선생님, 이보미 교감선생님, 세상과함께 미디어팀 정훈종, 공영관, 양희숙 활동가 (좌하부터 시계반대방향)) 

                         

올 봄 군산 지역사회에서 열린 ‘산돌 예술제’가 호응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오래간만의 오프라인 공연은 어떠셨나요?  


(김현숙) 걱정이 많았어요. 코로나19로 3년 만에 무대 공연을 했어요. 학생들이 오랜만에 무대에 섰을 때 그 긴장감이 어떻게 표현이 될지 걱정됐어요,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는 초기여서 관객들이 많이 와주실까도요.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많은분들이 와 주셔서 공연장이 한자리도 비지 않고 다 채워졌거든요. 산돌가족 모두가 너무나 감격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것들이 빛을 발하고 그 결과인 것 같아서 책임감도 느끼고 힘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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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산돌 사랑의 예술제의 발달장애인예술단 ‘그랑“의 플라스틱없는 날 공연 중



그랑 단원들은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지내왔나요?   


(김영희) 3년 전, 공연을 앞두고 코로나가 터졌고 공연이 무산됐어요.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을 못하는 상황이 왔고 배우뿐 아니라 저희 교사들도 많이 당황했습니다.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고 호응을 통해 에너지를 받는 것이 굉장히 힘이 돼요. 자존감도 높아지고요. 그것이 코로나로 무산되고 모든 활동이 정적으로 바뀌면서 의기소침하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퇴행이 오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 시기가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 주인공을 했던 학생들에게 그런 면이 크게 나타났어요.


그래서 온라인 공연을 준비하셨군요. 


(김영희) 온라인 공연은 처음 도전이었어요. 공연이 없을 때 보다는 나아졌지만 관객들을 직접 만나서 박수 소리도 듣고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할 때보다는 아쉬웠어요. 올 2월, 드디어 3년 만에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 2월 드디어 3년만에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인지 준비에 비해 실수가 많았습니다. 배우들이 정말 긴장을 많이 한 거예요. 

자폐성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외우는 걸 엄청 잘 해요. 그래서 10년 동안 연극을 하면서 한 번도 대사를 틀린 적이 없는 배우들이 대사도 틀리고요. 나오는 위치도 틀리고.  선생님들은 무대 뒤에서 정말 진땀을 흘렸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그 모습을 따뜻하게 봐주셨어요. 실수를 안 했으면 어쩌나 싶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답니다.(하하하) 확실히 오프라인 공연으로 관객들을 직접 만나니까 우리 배우들이 감정적인 면에서 많이 좋아졌어요. 효과가 컸어요. 


 

그랑 배우들이 좋아지고 있군요. 공연 후 어떻게 지내고들 있나요? 


(김영희) 2월 공연을 본 군산여고 동문 합창단에서 초청을 해주셨어요. 기후 위기, 환경 오염을 주제로 현대극을 처음 도전을 해봤는데요. 주제가 요즘 상황과 맞기도 하고 잘 봐주셨어요. 8월 27일 공연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공연은 처음이라서 걱정도 되지만 배우들의 긍정의 힘을 믿고 파이팅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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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를 외우고 있는 <그랑> 배우들 



‘그랑’은 발달장애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이보미) 그랑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잘 모르겠는데요.(하하)

 

(이보미) ‘그랑’은 동그랗게 어우러져서 같이 살아간다는 뜻을 가진 예쁜 우리말입니다. 발달장애인 예술단 ‘그랑’이 갖는 의미가 바로 그 거예요. 발달장애인도 여타의 사람들과 다른 특별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으로 같이 사는 삶을 바래요. 그게 현실적으로는 정말 녹록하지 않거든요. 이런 현실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가 큰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런 오해와 선입견을 줄여나가기 위해서 거리 캠페인을 할 수도 있고, 전단지를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직접 만나 삶과 경험을 공유할 때 훨씬 빠르고 근본적으로 불식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가장 관심 있고 잘하는 분야인 문화, 예술 ,연극 이런 분야를 통해서 하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발달장애인이 사회적 약자라는 테두리 안에 갇힌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존재,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랑은 그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응원해주셨지만 앞으로도 크게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극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면이 있을 것 같아요.

(김영희) 대사 연습으로 발음과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 많이 좋아졌어요.

(이보미) 대사는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동안은 학생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많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표현해요. 의사소통이 발전했어요.
                                  

그랑 활동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잘 드러나는 예가 있을까요?


(이보미) 의기소침하고 자존감이 낮은 학생이 있었어요. 일반학교를 다닐 때 발달장애로 왕따를 당했고 학교폭력까지 경험을 했습니다. “아무개야, 밥 먹었어?” 하면 ‘예’나 ‘아니요’로 대답을 하는 것도 몇 분이 걸리고 손바닥에 땀이 질퍽하게 나 있었어요. 그 학생이 연극무대에 서면서 그런 태도가 서서히 옅어졌어요. 지금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커졌습니다. 


학부모님 이야기도 하면요. 그랑이 만들어지기 전에 산돌학교에 연극부가 있었어요. 처음 연극을 공연장에서 하겠다니까 선생님들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첫 무대 공연은 ‘흥부와 놀부’였고 20분짜리 연극이었습니다.

그 첫 공연의 긴장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였고, 부모님들의 반응도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연극을 할 때 지금쯤 ‘우리 애들이 무대에서 연극을 한다’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나와야 맞는데 어머님들 표정이 그냥 평범했어요. 그때 배우 한 명이 대사 실수를 했고 10초 정도가 적막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쪽에서 어떤 엄마가 울고 저쪽에서 다른 엄마 울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무대에서 동작만 하고 다 녹음시켜서 립싱크를 한 줄 아셨대요. 우리 아이들이 대사를 외워서 무대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을 못하셨대요. 대사실수를 하니까 긴 대사를 외운 줄 아셨던 거예요. 아이들이 음식점 같은 곳을 가면 곁눈질하고 심지어 손가락질도 당한 경험이 한 번쯤은 다 있었던 부모님들이세요. 그런데 자녀들이 무대에서 박수를 그것도 기립박수를 받았으니... 그때의 감정은 형언할 수 없으실 거예요. 부모님들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요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말씀드려도 될까요? 첫 공연에서 10초 대사를 못 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학생이 이번 봄 공연무대에서도 그랬는데요. 대사가 생각이 안 나니까 무대 밑 선생님한테 가서 “선생님 대사,,, 선생님 대사...” 이렇게 물었어요. 연출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은 막 진땀이 다 났죠. 그런데 그런 모습조차도 너무 귀하게 봐주신 관객들이 계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일부러 재밌게 하려고 한 연출이 아니냐고 묻기도 하고 정말 히트를 친 장면을 만들어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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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숲체험, 생태체험, 재활용품활용 등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하여 활동하는 산돌학교.  



교육과 돌봄뿐 아니라 산돌 딸기농장, 꼬꼬마양배추 음료 제조공장 등 발달장애 학생들의 자립과 지역사회 안착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요. 근황과 앞으로 계획은요?


(홍진웅) 그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처럼 일자리, 직업활동을 통해서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자립’입니다. 서로 함께하는 자립입니다. 세상과함께가 도와주셔서 만든 ‘파란장미빨래방’이 2018년부터 잘 운영이 되어지고 있구요. 발달장애인 2명이 취업하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2020년 스마트팜부터 시작한 산돌팜은 식품제조공장까지 만들어져서 발달장애인 1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직업’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소외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토대의 마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것을 위해 애를 쓰고는 있는데 현실적으로 마케팅과 판로 등 운영 면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최근엔 중소기업진흥청, 경제통상원을 다니면서 여러 판로 지원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어요.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산돌팜에 가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힘을 내고 있습니다. 



세상과함께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이보미) 근래 여러 뉴스가 진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활동지원인을 밀어서 크게 다친 사건이 보도가 됐고요. 학교에서 선생님을 크게 폭행한 학생도 사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발달장애인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평범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뒷걸음질 쳐지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선생님들이 많이 다치고 있어요. 산돌학교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딜레마가 계속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너지고 무거워질 때 세상과함께 회원들께 위로를 받고 싶고 힘을 얻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선생님들의 모습, 우리 학생들의 모습, 우리 산돌 가족들의 모습이 세상과함께 회원들께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느끼는 세상과함께는요. 회원님들은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공정과 평화를 위해서 애쓰고 계시는 분들이십니다. 감사한 마음이고요.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충분합니다. 지금처럼 관심 가져주세요. 많은 선생님들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대신 전합니다.

(홍진웅) 몇 년 전 인연이 돼서 내밀어 준 따뜻한 손길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상과함께가 가지고 있는 가치나 비전들이 우리 학생들한테도 선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계속 연결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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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선 이 사회가 통째로 이동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뼈가 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책에서)


‘그랑’의 소개말로 이 문장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한 사람의 발달장애 학생이 동그랗게 어우러져 같이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통째로 이동 해야 한다’로요. 도래하지 않는 내일을 오늘로 견인해오는 힘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있다지요? 발달장애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로 살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있는 산돌학교의 분투에 더 많은 분들이 응답할 수 있길 바랍니다.